2016년 3월, 세상이 멈춘 5일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바둑판 하나가 전 세계의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이세돌 9단의 5번기 대국이었습니다.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수십억 배 많아, 당시만 해도 “AI가 프로 기사를 이기려면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국의 시작은 일종의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 대국 기간: 2016년 3월 9일~15일
- 장소: 서울 포시즌스호텔
- 최종 결과: 알파고 4승 — 이세돌 1승
전 세계 2억 명 이상이 생중계를 지켜봤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도 ‘인간 대 기계’라는 구도에 숨을 죽였습니다. 5일간의 대국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인류와 AI의 첫 번째 진지한 충돌이었습니다.
1국~3국: 충격과 공포
1국이 끝나는 순간, 해설석에 있던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졌습니다. 알파고는 인간이라면 절대 두지 않을 자리에 돌을 놓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판을 장악했습니다. 이세돌은 1국을 내줬습니다.
2국, 3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알파고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인간 기사가 흔들기 위해 쓰는 심리전, 장시간 대국의 피로, 압박감 — 이 모든 것이 알파고에겐 변수가 아니었습니다. 3연패.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습니다.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수를 분석하며 “이건 인간의 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수천만 번의 자기 대국(셀프 플레이)으로 학습한 알파고는 인간이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정석을 뛰어넘는 패턴을 이미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4국, 78번째 돌 — 인류의 반격

4국. 이미 3패를 당한 이세돌은 잃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둑 역사에 영원히 남을 한 수가 나왔습니다.
78번째 돌. 알파고가 그 자리에 돌을 놓을 확률은 단 0.007%, 즉 14,285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인간 기사라면 누구도 두지 않을 자리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의 학습 데이터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맹점이었습니다.
- 78수 착점 확률: 0.007% (14,285분의 1)
- 78수 이후 알파고 승률: 70% → 50% → 18% 급락
- 결과: 이세돌 1승 — AI를 상대로 인간이 거둔 공식 유일의 승리
알파고는 그 수를 마주한 뒤 오류를 일으키듯 판단이 흔들렸습니다. 이후 이세돌이 차근차근 판을 가져왔고, 4국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전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세돌 본인의 회고입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짜 승착은 68수였습니다. 78수는 알파고의 버그를 노린 꼼수에 가까웠어요.” 자신의 ‘신의 한 수’를 담담하게 꼼수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게 이세돌이었습니다.
알파고가 남긴 것
5국까지 마친 알파고는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더 이상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의 역량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AlphaFold입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AI로, 생물학계에서 수십 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를 단번에 해결하며 2024년 노벨 화학상의 영광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둑판 위의 싸움이 인류의 질병 연구를 앞당긴 셈입니다.
바둑계도 달라졌습니다. 알파고 이후 AI 바둑 프로그램은 일상이 됐습니다. 프로 기사들은 AI의 수를 연구하며 기존 정석을 뒤집는 새로운 수법을 익히고 있고, 아마추어 동호인도 AI 앱 하나로 어디서든 고수와 대국합니다. AI가 바둑을 죽인 게 아니라, 바둑을 새로운 차원으로 열었습니다.
2026년, 이세돌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2026년, 이세돌은 다시 AI와 마주앉으려 합니다. 이번엔 방식이 다릅니다. 상대방의 프로그램을 받아서 하는 대국이 아닙니다. 이세돌 본인이 직접 바둑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그 안의 AI와 맞붙는 것입니다.
기사를 떠난 뒤에도 바둑 콘텐츠와 AI에 깊은 관심을 유지해온 그가, 이제는 플레이어를 넘어 개발자이자 도전자로 돌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AI를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람과 AI가 바둑을 통해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 질문처럼 보입니다.
AI는 이제 바둑을 넘어 의료, 과학, 창작, 교육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세돌의 도전이 흥미로운 건, 그것이 단순한 재도전이 아니라 AI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AI를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이기려는 것이 아닌,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찾는 것.
마무리: AI 시대, 인간의 자리
2016년의 그 5일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고, 지치지 않고,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합니다. 하지만 이세돌의 78수는 이것도 가르쳐줬습니다. 인간은 AI가 예측하지 못한 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AI를 이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AI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AI가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AI가 만들어낸 판 위에서 새로운 수를 찾는 것. 이세돌이 10년 전 바둑판에서 보여줬던 것처럼요.
알파고와의 대국 1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여러분은 AI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고 계신가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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